역주
BGM입니다. 틀어놓고 보세요.





(자동재생)



1














2


죽어라







3


살아라







5


눈물이 나왔다...







9


...지금의 나에겐 무거운 거라서...







11


일을 하는 보람을 버리고 회사나 대우를 먼저 따지게된 나에겐 괴로운 소재다.

나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15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17


웃기려는 스레라 생각해서 열었더니...

슬퍼졌다...







21


꿈을 실현할 기회는....이제 더 오지 않겠지.







25


내 꿈은....뭐였지....


잊어버렸다.







26


난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







29


웃기는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좀 더 노력해볼까.

기다려라!! 나의 꿈!!







32











33


숙연해졌다.







35


떨굴 만한 꿈을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승리자 wwwwwwwwwww

승리...자... 맞지?




아...눈에서 뭔가 나오고 있어...







38


>>35


나도 눈에서 육수가...







44


누구... 내가 흘린 것을 발견하신 분 있나요?

나는 그게 무엇이었는지...이젠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어릴 적에는 손에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었는데.








45


꿈은 도망치지 않았어.

도망친 건 언제나 나.







66


이봐...그만해...이런 스레는...







67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나잖아.







68


연봉이 적은 걸 고민하고,

일이 힘들 걸 고민하고,

근무하는 곳이 도시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디로 갔지?







72


대기업에 취직한 나는 완전 승리자 wwwwwwww







그런데 나 사실은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77


다들 생각 이상으로 진지해졌다.


나도 안정적인 삶을 위해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사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취미는 취미로 끝내야 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 적도 있기에

>>1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89


돈보다...안정보다...

좀더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었는데.







92


>>89


네 글을 보고 울어버렸다.







100


뭐야, 이 쓰레기 같은 스레...라고 적으려 했지만.

나도 꿈을 흘려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주워야 하는데...







119


언제 부터 우리는 [되고 싶은 자신] 을 버리고, [될 수 있는 자신]을 뒤쫓게 된 걸까.







120


될 수 있는 자신, 그것도 좋아.

그 안에서도 되고 싶은 자신을 찾을 수 있으니까!







132


모두들, 지친 현대인이 되어가니까.







151


어릴 때 부터 꿈다운 꿈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작년,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이 손으로 꿈을 실현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언젠가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내 안에 포근히 품어둘 생각이야.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절대 이 손을 놓지 않을 거야.







152


>>151


진심으로 너를 응원한다.

우리 같이 힘내자구!







153


마음에 꽂히는 글이 너무 많은데.







154











185


그래, 나한테도 꿈이 있었지.

목적을 위해 걷던 중, 어느새엔가 걷는 게 목적이 되버린 점이 웃긴다.







192


꿈을 흘렸다 해도, 실패한 건 아냐.

단지 다른 길을 선택한 것 뿐이지.







199


넘어진 사람을 비웃으면 안돼.

그 사람은 앞으로 걸어가려 한 것이니까.

넘어져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하면 안돼.

그 상처는 언젠가 당신이 꿈을 향해 걸었다는 증표가 되니까.







226


이 스레 뭐야!! 꿈?! 헛소리 하지마!!








...나 잠깐 꿈 주으러 갔다올께.







275


어렸을 때 부터 꿈이 없었다.


친구가 [나는 축구 선수가 될 거야~] 라고 말하면

[될 수 있을리 없잖아 wwww] 라면서 웃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무직 니트.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진짜로 웃은 게 아니라, 그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396


어른이 되면서 시야가 좁아졌다.

어릴 때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생각했는데.


훗날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아, 즐거웠다~] 라고 말하는 것.

지금 나의 꿈은 이것이다.

이것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473


이 스레를 보고 무언가를 눈치챈 사람은 그것만으로 승리자.

포기하기에는 아직 가슴 속 열기가 너무 뜨겁잖아.

노력하자구.







488


옛날에는 정말 무지했다.

빨리 어른이 되서 영리해지고 싶었어.


지금은 바보같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의 우리는 가능성의 덩어리였으니까


인간은 젊음과 교환해서 지혜를 얻는다.


나는 이 말을 간신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576


꿈은 사라졌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로 행복해질 수 있게되었다.

이것이 어른이 된단 것인가.







679


울었다.

언제부터 였지.

꿈에 대해 말하는 친구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짓게된 게

옛날에는 나도 함께 뜨겁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987


학생일 때는 무한한 가능성을 꿈꿀 수 있지만...

일하기 시작하면 현실을 깨닫게 되니까 말야.







988


그럼에도 꿈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








992











993











994











996


중요한 건 꿈을 잊지 않는 거야.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한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이뤄진다.








997


괜찮아.


꿈은 반드시 이뤄지게 마련이니까.







998


다시 고동치고 있나요?







당신의 죽어버린 꿈은.








999


인생은 꿈을 실현하는 길이다.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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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잊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침.





2ch 어비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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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사람 울컥하게 만든 스레였음. . . .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 항쟁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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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남기고 싶어서 다시 읽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원문 및 출처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52802





우 리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지역감정'이 아니라 다른지역 사람 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편집증' 단계에 이른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감정' 이라는 말 대신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단어를 써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겪은 대로 말하자면(유시민씨는 토종 TK) 경상도 사람들의 전라도 혐오감은 '전라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형성된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 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
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그 래도 무슨 구체적인 사건을 근거로 말하면 좀 나은 편이다. 너도 나도 맞장구를 치다 보면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하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 하는 것처럼 보여도 조심해야 한다' 거나 '군부대 철조망이 누구 때문에 생겼나' 하느 따위의 일반적 이고 추상적인 주의 주장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리기 때문에 경상도에는 아무리 입이 심심 해도 해태껌은 사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곧바로 출발하는 광주고속 버스에 빈 자리가 있는데도 30분씩 기다렸다가 (광주고속이 정말 전라도 사람의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회사 차를 타는 젊은이도 드물지 않다. 나는 대구에 사는 동안 이런 아이와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는 전라도 사람들이 '아무래도 좀 그럴 것' 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전라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면서 편견을 가지기로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이다. 88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대구와 광주는 서로 왕래가 드문 도시였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혐오증'은 거의 전적으로 서울 등 객지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 주는 정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강원 충청,경기도등 다른 지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매우 '한국적인 특수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정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조성되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생기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나는 대구를 떠난 이후에는 경상도 출신 치고는 전라도 사람들을 많이 겪어본 편이다.대학 기숙사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에서 봉천동 고개 꼭대기 달동네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 단골로 다니던 봉천 중앙시장 순대집 아저씨가 그랬고, 신산스러웠던 80년대를 헤쳐 나갔던 동지들 중에도 유난히 그 동네 출신이 많았다. 당원들이 거의 백 퍼센트 전라도 출신이었던 평민당에 들어가 관악을 지구당(신림동) 교육부장으로 일한 기간에 사귄 사람들도 많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겪은 바로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 비해 싹싹하고 정이 많으며,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논다. 물론 어느 지방이나 그렇듯 개중에는 '욕심 많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너그러운' 사람과 '좋은 사람'도 있다. 특별히 어느 한쪽이 많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건 하는 일이 대개 '험한 직업'이라는 사실 이다. 예컨대 무슨무슨 부장이나 대의원 등 직함을 가지고 있거나 지구당 사무실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공사판 노가다,포장마차 사장,중극집 종업원,복덕방 주인 등이 적지 않고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거나 이른바 '마치꼬바' 사장,약사 또는 제법 번듯한 점포를 가진 상인쯤 되면 성공한 편에 속한다.

물론 가끔은 부동산을 좀 가졌거나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대학을 나와서 사무직 근로자로 일하거나 의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선거 철에 특별당비 모금 구좌로 후원금을 넣기는 하지만 '김대중 당'의 지구당 사무실에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빈손을 쥐고 서울에 올라와 남들이 꺼려하는 험한 일을 해서 먹고 살다 보니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자녀들 역시 생산직이나 하급 사무직 근로자,음식점 등 서비스업체 종업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의 선거유세를 다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양김'의 지지자들은 행색이 판이하게 다르다. 김대중 유세에 나오는 사람들은 잠바 를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옷차림뿐만 아니라 얼굴이나 손을 보아도 고생하며 사는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김영삼 유세장에는, 그가 이직 야당 후보였던 시절에도 말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바바리를 입은 신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전라도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이유를 찾으려고 '차령 이남은 지세가 배역의 기운이 있으니 그 곳 사람은 중용하지 말라' 고 한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 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 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 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 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 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상대적 빈곤'이 박정희 시대에 진행된 지역적 불균등 발전의 결과라고 본다. 아다시피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공장이라는 공장은 거의 모두 수도권과 경남북에 몰려 있었다. (경남북이 전남북보다 산업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 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보지만 여기서 따지지는 않겠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남북의 시골 사람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게 멀리 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사사에는 언제든 고향집 에 갈 수 있었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확실한 일자리가 있는 경우뿐이었다.

다시 내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 해 보자. 우리 친척들은 친가와 외가를 막론하고 대부분 대구와 영천,경주 일대에서 살았는데,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번에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친척형과 누나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모두들 대구 에서 공장을 다녔다. 누나들은 모두 시집을 가서 지금은 살림만 하지만 형들은 기술 을 배워서 조그만 공장을 차리기도 했고, 그런 누나와 형들의 도움으로 공업 고등 학교나 대학 공부를 한 내 또래 사촌들은 서울이나 수원 등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의 곡창 전라도 사람들은 60년대 후반 이후에 진행된 농업의 해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지역에 산업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간 사람들은 몸으로 때우는 궂은 일밖에 할 수가 없었고 기초교육이라도 받은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 받은 것은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78년 여름부터 나는 구로공단 노동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는데, '호남선 완행열차를 용산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구로공단 행이요, 길을 건너서 타면 청량리 588' 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맘때였다. 야학 학생이 약 40명 쯤 되었는데 거의 다 섬유,봉제,전자 공장에 다니는 열일곱에서 스물 사이의 내 또래 전라도 처녀들이었다. 학생들의 신상자료에는 월 평균 급여액 이 나와 있었는데 매주 60시간 정도 일한 대가가 2만5천원 정도였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식비로 내는 돈이 월 2만1천원, 신림9동 골목의 2인 1실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이었고, 나는 고2짜리 남자아이에게 매주 여섯시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월 6만원을 버는 참이었다.

야학 학생들의 근로시간과 월급 액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신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이른바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누리는 안정된 생활과 높은 지위가 불평등이 라는 사회악에 '오염된 열매'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힘은 없지만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싸움에 참여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이야기가 조금 엇길로 나갔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의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전라도의 지세' 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타고난 근성'도 아닌 박정희 정권의 과격한 농촌 해체 정책과 걍상도 위주의 불균등한 산업유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 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 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서,주위의 충고와 권유를 무시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 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지역사람이라면 모를까, 경상도 사람이 스스로 '전라도 혐오증'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을 '정신병'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이 옳지 않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체적인 예 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청와대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정계,군부,관계,학계,재계의 의사결정 구조 꼭대기에는 '부산 복국집'에서 '지역감정이 확 일어나야 한다' 고 말한 전직 법무 장관과 내무관료들 같은 경상도 출신 '나으리' 들이 앉아 있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 인사권을 행사할 때 경상도 출신을 우대해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면 서도 전라도 사람들은 '출세길' 을 막아 버린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직책에 사람을 쓸 때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다 보니
경 상도 사람이 좀 많게 되었다' 고 주장한다. 김영삼 대통령도 집권 중반기 내각에 전라도 출신이 거의 없는 것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옳은 말이다! '노른자위 보직을 여럿 거친 사람일수록 업무능력이 뛰어나다' 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찾으면 전라도 사람이 보일 리가 없다. 원래부터 노른자위 보직은 그 사람들에게 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대학교에서 재단 이사장과 총장이,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전라도 출신은 교수로 뽑지 않는다는 것을 교수 인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 (지금은 달라 졌기를 바라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대학이 정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육균사관학교에 입학할 때는 전라도 청년이 경상도 청년만큼 수가 많은데, 별을 단 사람을 보면 전라도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 가 '경상도 사람이 유전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휘업무를 더 잘하기 때문에 별을 많이 달았다'고 누가 말 한다면,이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 들이 일본 사람에게서 차별을 당하며 사는 것을 보고 매우 분개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분개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별로 분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족차별 이나 인종 차별은 나쁘지만 같은 민족 안에서 지역 차별을 하는 것은 괜찬다고 생각 하는 것일까?

일 본사람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조센징은 더럽다'고 한다. 그런데 식민지 주민 '조센징'이 일본 사람들이 '더랍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더럽게' 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에 부려먹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네들이 조선을 집어 삼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니까. 그들은 또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조선인 또는 한국인이 일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자기네 손으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막아 놓고 있다.

'조센징'이 자기네가 '더럽다'고 여기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도록 해 놓고는 그 입으 로 '조센징은 더럽다' 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일본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 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의 '나으리'들은 자기네도 똑같은 짓을 하면서 자기가 정신 나간 사람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지역 사람들 역시 정신 나간 짓 그만두라고 충고 하는 법이 별로 없다.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일까?

전라도에도 요즘에는 공단이 생긱고 있다. 중국경제가 번창하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다 뚤리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라도 혐오증'이 치유될 수 없다. 달동네에 몰려 사는 '서울 전라도 사람들'이 호화 빌라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서울 경상도 사람들' 만큼 잘 살게 되어야 비로서 이 질병의 '발병 원인'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막연히 '우리 모두 지역감정을 청산합시다!' 하고 외치는 분들께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개탄 보다는 속마음을 열고 소근소근 조용하고 끈기있게 토론하고, 팔도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그 곳의 실정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호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이 '집단적 정신병' 을 그 자체로서는 별로 해롭지 않은 '지역 감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데만도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